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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과학계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 세계를 직접 보고 제어하려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나노 세계는 10억분의 1m만큼 작은 규모의 세계다. 머리카락 두께의 100분의 1 수준인 마이크로 세계보다 1000배 더 작다. 

눈에 보이기는커녕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는 세계를 봐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원자나 분자 같은 물질의 기본 단위 수준을 관찰할 수 있다면 그 다음에는 그 크기에서 제어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종민 KAIST 신소재공학부 교수는 “DNA에서 염기 서열을 직접 하나하나 바꿀 수 있게 되거나 인공 강우에 쓰이는 핵을 자연에서 만들어지는 빙정핵과 똑같이 만들 수 있게 된다”고 나노 세계를 관찰하는 기술이 개발되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최근 나노 세계 관찰의 화두는 정확하게, 실시간으로, 모든 과정을 볼 수 있는 기술에 집중돼 있다. 투과전자현미경은 세 조건을 모두 만족시키는 최신 관찰법이다. 이론적으로 피코미터(pm·1pm는 1조분의 1m)급 해상도를 가지고 있다.

이 현미경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만만치 않은 기술이 필요하다. 내부가 진공이어서 액체 시료를 넣으면 관찰하기도 전에 증발하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해 그래핀을 이용해 액체를 가두는 기술을 육 교수팀이 2012년 개발했다. 세상에서 가장 얇은 물질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래핀은 탄소 원자 6개가 육각 구조를 이루며 그물처럼 넓게 펼쳐진다. 두께는 고작 0.34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밖에 안 되고, 오로지 수소 이온만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그물눈이 촘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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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그래닉 기초과학연구원 첨단연성물질 연구단장이 이끄는 연구팀은 액체 시료를 그래핀 그물에 가두는 기술을 활용하여 유기 고분자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데 성공해 재료분야 학술지 ‘어드밴스트 머티리얼스’ 9월 19일자에 발표했다.

투과전자현미경을 활용해 이현욱 울산과학기술원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는 리튬-황 배터리 내부를, 장재혁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전자현미경연구부 선임연구원은 고체산화물 연료전지 내부 반응 과정을 관찰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육 교수의 다음 연구 목표는 액체를 자유롭게 흘려보낼 수 있도록 현미경 내부에 그래핀 터널이 있는 미니 실험실을 만드는 것이다. 육 교수는 “그래핀 터널을 이용하면 바이러스를 살려둔 상태로 주변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핀 터널 안에 바이러스를 둔 채로 산성 용액이나 염기성 용액을 번갈아 흘려보내면서 실시간 변화를 관찰할 수도 있게 된다는 것이다.

초고성능 거대 현미경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방사광 가속기도 나노 세계를 관찰하는 장비다. 20세기 초반에 개발된 X선 회절법을 이용한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활용에 들어간 4세대 방사광 가속기는 현존하는 장비 중 물체의 구조를 가장 정확하게 볼 수 있다. 

4세대 방사광 가속기가 강력한 이유는 X선을 레이저로 만들기 때문이다. 가속기에서 발생한 X선 파장들을 정렬시켜 강력한 레이저로 만들었다. X선을 레이저로 만들면서 물질의 변화를 fs(펨토초·1fs는 1000조분의 1초) 단위로 관찰할 수 있게 됐다. 분자들 간의 연결, 결합 반응은 그 속도가 빨라 기존의 방법으로는 전 과정을 완벽하게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3세대 가속기에 적용된 것을 포함해 지금까지의 X선 회절 관찰이 일반 카메라였다면 4세대 방사광 가속기는 초고속연사 카메라인 셈이다. 이효철 KAIST 화학과 교수는 “X선 레이저로 물질의 변화 과정을 추적하면 반응의 시작과 끝뿐만 아니라 과정 중간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X선을 레이저로 만들면서 정확도는 더 높아졌다. 기존에는 정확한 결과를 얻기 위해 수백 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 크기로 결정을 만들어야 했다. 단백질 같은 생체 물질은 결정으로 만들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3세대 방사광 가속기는 수백 μm까지 키운 결정만 관찰이 가능했지만 4세대 방사광 가속기에서는 그의 1000분의 1크기인 수백 nm 크기만 돼도 단백질 분자 모양을 알아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