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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지 학부과정생 (4학년)이 한겨례신문에 칼럼을 게재하였습니다.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왜냐면] 감정마저 상품화되는 현대사회의 ‘감정노동자’

“하긴, 너 같은 알바생 따위가 그런 걸 알 리가 없지.” 지난여름, 서울에서도 가장 고상하고 부유한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홀짝거린다는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브런치 카페에서 들은 ‘가장 고상한’ 한마디다.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던 한 남자와 여자는 흐린 날인데도 선글라스를 끼고 카페에 들어왔다. 남자는 벤츠 차 열쇠와 명품 지갑을 카운터에 탁 올려놓으며 브런치 메뉴를 주문하고 계산하며 식사 시간까지 포함해서 1시간이 넘냐고 물어봤다. 당시 아르바이트생이었던 나는 웃으며 상냥하게 대답했다. “식사 준비까지는 20분이고 보통 40분 안에는 다 드시는데 좀더 앉아계셨다 가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1시간 뒤, 그들은 음식이 1/4 정도 남은 접시를 카운터로 가져와서는 다짜고짜 환불을 요구했다. ‘아르바이트생 교육을 잘못해서 예상 식사 시간을 초과했다. 기분이 나쁘니 음식 비용과 주차 비용도 달라’는 것이었다. 거듭되는 나의 사과에 돌아온 대답은 “하긴, 너 같은 애가 가로수길 주차비용에 대해 알기나 하겠니?”였다.

 

 

이런 일은 우리 주변에서 흔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데 최근 포스코 그룹의 한 임원이 승무원을 폭행하는 사건이 일어나며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이 주목받고 있다. 감정노동은 실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무관하게 직무를 행해야 하는 감정적 노동을 말하며, 은행원·승무원·전화상담원 등이 감정노동자에 속한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은 억누른 채 고객을 응대하다 보니 감정적 부조화를 초래하게 되고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를 적절히 해소시키지 않으면 정신적 스트레스, 우울증, 심지어 자살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데, 국내 감정노동자가 600만명에 달하면서 감정노동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감정노동의 문제는 왜 발생하는 것일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돈과 권력이고, 고학력은 자연스럽게 돈과 권력의 필수 요소가 되었다. 결국 돈과 권력이 없는 저학력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약자가 되고 ‘만만하게 봐도 되는 상대’가 되어버린 것이다. 감정노동자들 중 대부분이 여성인데, 비정규직의 비율이 높고 임금은 낮으며 근로 조건이 좋지 못한 서비스업에 여성들이 많이 종사하다 보니 여성 노동이 저평가되어 있는 것 또한 큰 원인이다.

 

 

2010년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3096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서비스직 감정노동자의 26.6%가 심리 상담이 필요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고, 이는 징계해직자 우울증 비율(28.5%)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러한 감정노동의 문제는 개인의 감정에만 영향을 끼치는 1차적인 문제가 아니다. 근무 효율성이 떨어져 회사의 생산성에도 악역향을 끼치고 노동자들이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집에 돌아가 해소하는 경우가 많아 가정불화가 생기는 등 2차적인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개선 방안을 필요로 하고 있다.

 

 

유럽의 경우에는 직무 스트레스를 제조업과 서비스업에 광범위하게 적용해서 산업재해의 범위를 사고 중심에서 질병 중심으로 확대하고 있고, 유럽연합에서는 2000년부터 직장에서 받는 직무 스트레스를 차별행위라고 간주하여 법을 통해 이를 처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한 일본에서는 백화점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진상 고객’들을 직접 관리하며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고 한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아직 직무 스트레스를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고 있고, 처벌할 수 있는 법안 또한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감정노동자들은 어떠한 보호도 없이 방치되어 있는 상황이다.

 

 

노동자들이 손님에게 스트레스를 한번 받고, 인사평가 등 때문에 자신이 속해 있는 기업으로부터 한번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한다. 노동자들은 피고용인이기 때문에 그들보다 더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업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관리하는 것이 더욱 빠르고 효율적이다. 또한 기업들이 피고용인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진상 손님’을 경계할 객관적 근거가 필요한데 이를 위해 처벌이 가능한 법안이 필요하다.

 

 

제도적인 보호 장치가 마련되고 이를 이용해 기업이 피고용인들을 보호한다면 감정노동 문제의 심각성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한인임 노동환경건강연구소 연구원은 “선진국처럼 고객과의 마찰 등에서 오는 직무 스트레스를 심각한 문제로 보고 기업 차원에서 상담 인력과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도 ‘여성 감정노동자 인권가이드’를 통해 “반품 요구에 대한 대응 기준, 고객의 욕설·폭력에 대한 대처 방안 등을 마련하라”고 권고하였다.

 

브런치 카페에 왔던 ‘진상 남녀 손님’이 소란을 피웠을 때에도 결국 사장님이 오고 나서야 문제는 해결됐다. 나는 내가 주인이 아닌 카페에 고용된 아르바이트생일 뿐이었고, 월급과도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감정과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참아야 했다. 내가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을 때 사장님이 와 “무리한 요구로 우리 카페의 직원을 괴롭히지 말라. 요구를 들어드릴 수 없고 더욱 소란을 피운다면 영업방해로 경찰에 신고를 하겠다”고 하자 그들은 그제야 못 이기는 척 돌아갔다. 만약 그때에 사장님이 무조건 손님 편을 들며 나를 다그쳤다면 우리 가게에 ‘진상 손님’은 끊이지 않았을 것이고, 나도 무척이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보호를 받으며 일하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그 일 이후에도 즐겁고 자신있게 일을 할 수 있었다. 그 브런치 카페는 보수는 많지 않았지만 나중에 취업을 해서 회사에 다니게 되어도 기억에 오래 남을 일터였다.

 

 

 

박은지 한국과학기술원 신소재공학과 4학년

 

 

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because/585463.html